학원에서 매일 자판기 커피를 쉬는 시간이면 자주 마셨는데
나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자판기 커피를 마셔대니 늘 자판기 앞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어느날 내가 뽑은 커피엔 자판기에 프림이 떨어져 프림이 들어 있지 않았다. 난 화가 났지만 달달한 다방커피와는 다른
그 짙은 커피가 색다르게 느껴지고 많이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는다는 것을 몇 잔을 더 마셔 본 후 깨닫게 되었다.
프림은 유지방을 가공한 것이니까 두 세잔 마시면 느끼함이 느껴진다.
그 뒤로 종종 일부러 커피와 설탕이 든 자판기에 보면 설탕커피라는 것을 애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창시절이 지나고 군대를 지나 취직을 할때까지
나는 블랙보다는 항상 설탕커피를 마셨다. 가비방에서도 도투루에서도 남포동에 수많은 커피다방이나
카페에서도 광안리에 카페 빌딩들 안에서도 설탕은 꼭 넣어서 마셨는데... 혹시... 어디가서 폼 좀 잡고 싶다...
좀 멋지게 설탕통에서 설탕을 떠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커피를 스푼에 떠서 한 방울을 설탕통에 떨어뜨리라는 것.
그러면서 그 방울을 살짝 파내보면 각설탕같이 덩어리가 진다. 그걸 떠서 넣어주면서 내 마음이라고...
각설탕 보다는 좀 낭만이 있을것이다.
암튼 이후에 서울에 출장을 가서 아는 형네 자취방에서드립커피를 알게 되었다.
이 형은 지독한 커피광이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해장을 꼭 커피로 하는 습관이 있었다.
커피를 그 때 처음으로 킬로그램 단위로 사서 그라인더로 갈아서
드립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째 맨날 모뎀으로 접속하면 좀 갈고 오겠다고 하더니... 뭔가 했는데 그것은 수동 그라인더였다.
원두가 갈아진 것과 갈아서 마시는 것은 천지차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백화점에 가서 산 것이 지금도 집에 있는
내 그라인더 1호다. (현재 내 그라인더는 3호까지 있음) 어디 누가 만든지는 모르는데 이태리제라고 했다.
유일한 사실은 바닥에 Made in Italy라는 직인;;;
암튼 뭐 잘 갈리고 커피 그라인더의 역할로는 훌륭했다. 그리고 드립머신은 필립스 커피메이커...
당시 어머니가 완전 다방커피 매니아셔서 그걸 좀 어찌 깨드릴려고 건강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보다는
진짜 커피가 나을 것 같아서 원두랑 세트로 사다드렸는데 싱겁다고 싫어하셨다.
하지만 꿋꿋이 그리고 사무실에도 같이 원두를 사서 갈아서 마셨는데 당시엔 헤이즐넛이라는 정체 불명의 커피가 유행이던 시절이라....
처음엔 신기하고 향이 좋아서 좋아했었는데 어쩐지 맛은 영~ 없어서 싫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원두찾아 삼만리... 항상 좀 더 새로운 맛을 찾았다.
사이폰, 쵸콜렛 라즈베리 커피, 블랜드 커피들... 그리고 커피 탐험 하지만 알고 마셨다기 보다는
그저 좀 더 색다르고 뭔가 호기심에 그랬던것 같다.
하지만 원두가 저렴했던 시절이 아니었고 대중화 되었던 때도 아니었기에 좋은 원두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비싼 원두는 200g에 3~4만원씩 할 때였으니...
쵸콜렛 라즈베리 같은 것 말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입품이란 것만 알고...
정체불명의 커피들을 마시다가 정착한 것은 로즈버드나 자뎅의 매장용 원두를 팩으로 사는 것이었다.
결국 나도 서울의 형같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양과 질의 타협을 하고만 것이다. 200g씩 사서는 감당이 안되었다.
그렇게 그렇게 지내다가 진짜 커피와 로스팅 그리고 핸드드립을 하는 집을 알게 되었다.
그 후와 이전은 참 많이 달라졌다.
도구를 사모으고 나만의 주전자가 갖고 싶어졌고 세상의 원두의 이름들이 지명이랑 지역을 포함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블랜드와 오리지날의 차이 그리고 로스팅의 정도에 따라 물의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와인처럼 커피도 잔에 따라 맛이 다르다. 좋은 잔에 마시면 더 좋은 기분을 느낀다.
잔을 입에 대는 순간의 감촉과 편안함 손잡이 모양에 따른 편함 그리고 에스프레소...
그런식이다. 커피는 아주 원시적이고 향토적인 기호품이지만 방법과 사람에 따라 참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최첨단의 머신에서 멋지게 뽑아낸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최첨단 과학의 산물과도 같다.
어느 토요일 오전, 여유롭게 신선한 오전의 공기와 토스트 한 조각 그리고 콜롬비아커피의 향긋함을 즐기는 시간을 떠올려본다.
한쪽 구석에는 아침 신문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는 노신사가 있고 보스스피커에서는 오전에 어울리는 클래식이 나온다.
집에서 피곤함에 일어나 귀찮은 그라인더질을 끝내고 나무로 된 조그만 서랍을 빼낼때 나오는 그 커피원두의 향에 손길이 바빠진다.
얼른 드립해서 마시고 싶다!
물을 데우고 황동주전자에 부어 온도를 낮추고 서버와 잔과 드리퍼의 종이필터를 적시고 데운다.
그리고 원두를 채운 드리퍼에 점적으로 커피를 부풀린다.
1분정도 기다린 후에 드립을 시작한다. 사실 커피를 드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주의점은 종이에 물이 묻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커피의 굵기와 물온도....
드립을 하면서 원형으로 돌려주는 방법은 좀 서툴러도 된다. 그렇다고 맛이 아주 차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온도와 굵기는 그리고 부풀리기는 중요하다.
그것만 주의하면 한 잔의 맛좋은 커피를 즐기게 된다. 물론 제일 중요한 신선하고 좋은 원두를 구하는 것이 첫번째지만...
영화 '갈매기식당'에 보면 원두를 갈아서 채운뒤에 맛있어지는 주문을 외우며
손가락으로 산봉우리같은 원두부분을 콕 찍어 분화구같이 만드는데
따라해봐도 좋다. 초보일땐 조금 도움이 된다. 주문을 커피루악이라고 외치는데 루악커피를 말하는 것 같은데...
사향고양이 커피를 잘 못 알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멋진 것은 커피를 즐기면 된다는 그 사실 하나!
나머진 그냥 자연스러우면 좋다. 어느날은 오히려 커피를 부풀린 후에 물을 붓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그것도 꽤 좋은 방법이다. 사이폰 커피는 휘저어 내리는데 그런 방법으로 해봤는데 꽤 맛있었다.
너무 커피를 아끼지 말고 농도는 취향이니까...
끝까지 내리지 말고 어느정도 내린 후에 뜨거운 물로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쉽다. 그리고 맛있는 부분만 빼내기 때문에 더 좋다.
이제 모두 한 잔의 멋진 커피를 즐길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원두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나는 원두들... 만델링, 스타벅스에 원두 수마트라섬에서 나는 것들...봄에 나온다. 콜롬비아 커피, 중남미 원두들...
이디오피아, 과테말라 안티구아, 파푸아 뉴기니, 하와이안 코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등
조금 강하고 진한 맛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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